


일그러진 디아나
Pearl Leticia Wade
펄 레티샤 웨이드
26세 | 시스젠더 여성 | 170cm | 55kg | 영국 | 혼혈

다시, 맨발.
희게 넋 놓은 것처럼 녹음과 월광으로 아름다운 섬을 배회한다.
머리칼은 님프들이 손수 땋고 빗어준다. 그가 입은 드레스 역시, ‘그러고보면 언젠가 이런 옷을 입기로 했는데’라고 중얼거리는 것을 님프들이 듣고 대신 손수 지어다 입혔을 뿐이다. 아낌없이 바다에서 흘러든 진주를 쓰고 그가 좋아하던 붉은 꽃을 씌웠다. 덕택에 겉면만은 이러한 전장 나서는 이답잖게 아름답다. 당장 어딘가에 박제될 고아한 예술품 같다. 당장이라도 분수대 중앙에 세워둘 여인상 같기도 하다.
그렇다. 이성과 자유의지, 열망과 행복,
이 중 하나라도 제대로 쥔 한 명의 인간다운 느낌이 없다.
부러 유지한 웃음기가 사라진 낯은, 모든 게 아연한 듯 이지 반쯤 삭은 채 그대로 뜨인 진주빛 눈동자를 더는 가리지도 숨기지도 아니한다. 본능대로 걷고 부러 이성을 거부한 채 눈을 감는다. 그래서 한때 무엇보다 오색찬란하던 눈동자에 빛이 돌아오는 건 눈가를 적시는 물기가 반사되었을 때 외에 없다. 그렇게 되었다. 그저. 그렇게,
완전한 영락(零落).
성격
모든 것이 무너졌다.
그가 거의 일생을 바쳐 구축해온 것들의 잔해가 비참히 나뒹군다.
이것 또한 ‘운명’이었음을 그는 애써 믿어본다.
[ 감정 조절의 실패 / 극도의 불안감 / 어딘가 멍한 / 상냥의 파편 / 그리고, 살의 ]
이제 와서 어떻게 부정할까. 펄 레티샤 웨이드는 처음부터 본성이 글러먹은 사람이었다. 아닌 척을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성실히 해내느라 바쁜 사람일 뿐이었지. 그러나 그는 덕택에 점차 오만해졌다. 동정하자면 사실 어느 정도는 그럴 만도 했다. 그는 타인들이 봐도 꽤나 성공한 사람 같았거든. 너는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소리를 듣거나 심지어는 졸업 후에도 연락하자 약속하는 친구들까지 사귈 정도가 되었으니, 진짜로 그만하면 성공한 것 같았거든.
상기해보라. 영 기이하고 엉뚱한 구석이 있는, 사람들이랑 어울리길 좋아하면서도 어딘가 어색하다는 평을 듣던 어린애는 해가 갈수록 점차 능숙해졌다. ‘이렇게 하면 남이 좋아한다’, ‘저렇게 해야 남이 자연스레 받아들인다’는 수백수천 가지 논리회로를 외우고 습관화시켰기 때문이다. 참고로 그가 가장 마지막에야 수용한 ‘자연스러움’은 ‘이렇게까지 친구에게 집착하는 모습은 기이하게 받아들여지니 정도를 조절해야 한다’였다. 우습게도. (고마워, 친구야.)
그는 신이 났다. 그는 자기가 신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사람이라는 점에는 그닥 관심이 없었지만, 어쨌거나 최악의 순간에도 늘 자신의 옆에 같은 운명을 진 친구들이 몇이고 있을 거라는 점은 좋았다. 그들은 분명 괴롭거나 슬퍼하거나 절규하거나 뭐든 하나는 할 것 같긴 하지만, 어쨌거나 그의 곁에 있어줄 터였다. 그럼 됐지. 그는 아무튼 그런 반응을 보고 위로를 하거나 같이 울거나 하면서 적어도 외롭진 않을 것이었다. 진짜로 가슴이 따끔거리는 날도 있겠지. 하지만 그마저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제가 제법 사람다워졌단 소리니까.
성인이 된 후,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그는 여전히 잘 살았다. 학창시절의 친구들과 기대만큼 만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외롭지는 않았다. 그는 상냥하고 착하고 선량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낙소스 섬’에 드나들길 대체로 꺼려하는 친구들과 달리, 그는 틈만 나면 꿈을 통해 섬을 드나들었다. 잠들기 직전의 마법사들과 소통하고, 다시 아직 잠들기 전의 사람들에게 인사와 부탁을 전해준다. 딱히 광고한 적도 없었으나 입소문을 탔는지 그를 절박하게 찾는 이들은 많았다.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어느 진영에 들어갈지 궁금해하거나 혹은 조금이라도 설득해보려 그를 찾는 이들만 해도 많았다. 그는 매번 그들의 아픔에 ‘공감’해주고, ‘이해’해주고, 상냥하게 속삭였다. 지금만큼은 그래도 제가 옆에 있지 않느냐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본래 파트로나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쪽이 좀 더 정의롭지 않나. 비록 마법 사회를 훨씬 선호하긴 했지만 그와 별개로 그는 결코 멍청한 작자는 아니었다. 그랬으면 처참한 사회성과 도덕성을 어떻게든 기워내 지금만큼의 평을 차지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 명석한 머리로, 머글도 마법사도 같은 인간이라고, 당장 울부짖는 사람들이 있더라도 파트로나에 가는 것이 두고 두고 ‘옳은’ 행동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쪼록 그는 제 출신 기숙사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 그럴듯한 사람이니까.
너무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고 그렇게 되도록 온힘을 다해 노력했으니까.
이미, 이제는, 그런 것 같았으니까.
스물셋, 그는 정신없이 도망쳤다. ‘사건’이 터진 뒤 24시간도 지나기 전 그는 제 손으로 저지른 범죄를 은닉하고 급하게 당분간의 재산 행방을 결정하는 서류를 휘갈겨 작성한 뒤 때마침 현실에 현현하기 시작한 ‘뉴 낙소스’로 도망쳤다. 자의적 실종이었다. 아니다, 정확히는 타의에 의해 쫒겨나기 전 그나마 생각나는 도피처로 울며불며 기어들어간 것이다. 다감한 님프들은 울부짖는 그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뭐 어때요?
곧 더 하게 될 것인데.
그러므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망가진 채로 살았다. 아닌가? 그것이 진짜 '삶'이라 부를 수 있긴 하던가? 그러나 어쨌거나 그의 생명은 이어졌고 그는 울거나 웃거나 좌절하거나 또는 억지로 행복한 척 시늉도 해보며 지냈다. 극도로 불안해하다가도 다 놓은 듯 그저 멍하게 허공을 응시하기도 했다. 죄로 인해 갈라진 영혼의 틈새로 모든 기력도 의욕도 다 흘러나간 것처럼 시선이 무의미하게 부유했다. 물론 그런데도 여전히 상냥하기도 하였다. 그가 십오년 간 갈고닦은 상냥함의 기술이 그렇게 하루 아침에 전부 말소되기도 어려운 까닭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삼 년, 그는 본인이 무시해온 과한 충동성을 합리화하는 용도로도 써먹었다. 하므로 누가 그를 비틀리지 않았다 하겠는가. 이제는 과연 누가.
아아, 다만 한 가지,
여전히 외로운 것만은 사무치게 싫어서…….
지팡이
산사나무 / 유니콘의 털 / 7.9인치 / 잘 휘지 않는
지팡이 제작자 그레고로비치는 산사나무에 대해 ‘지팡이가 탄생한 나무와 같이 역설로 가득 찬, 이상하고 모순적인 지팡이를 만들어 내는데, 이파리와 꽃잎은 치유의 힘이 있으나 잘린 나뭇가지는 죽음의 냄새가 난다’라고 썼다. 산사나무 지팡이는 그것의 가장 적절한 짝과 비슷하게 복잡하고 내적으로 흥미로운 본성을 지니고 있다. 산사나무 지팡이는 치료 마법에 몹시 적절할 수 있지만, 동시에 저주에도 아주 잘 맞으며, 나는 일반적으로 산사나무 지팡이가 혼돈의 시기를 겪는 마녀나 마법사와 함께, 혹은 충돌하는 본성을 지닌 자와 함께 가장 편안해 하는 것을 관찰해 왔다. 그러나 산사나무 지팡이는 터득하기 쉽지 않으며 나는 그 재능이 증명된 마녀나 마법사의 손에만 산사나무 지팡이를 쥐어주는 것을 고려해 왔으며, 그렇지 않으면 그 결과가 위험할 수 있다.
/ 위자딩 월드
잘 휘지 않는 지팡이었다. 울부짖으며 함부로 다룬 날, 휘는 일 없이 그대로 끄트머리 일부가 산산히 부서졌다. 마법은 그런데도 잘만 나왔다. 산사나무의 지팡이답게.
기타사항
RH+AB, 0601, 쌍둥이자리, 메이든 블러쉬 로즈나를 사랑한다면 찾아내리라, 알렉산드라이트양면성
그리고 유월의 진주
01. 펄 레티샤 웨이드
우리 딸의 눈은 꼭 진주처럼 아름다우니, 이름을 그렇게 지어요.
그는 대가 거의 끊겨가는 순수혈통 마법사 가문 출신의 어머니와 평범하지만 친절한 머글 아버지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진주의 눈을 한 우리의 사랑스러운 외딸. 그러나 그 아이가 아주 어릴 적부터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는 걸 넘어 타인의 감정에 큰 관심이 없었다는 것은 그러므로 그 선량하고 평범한 부부의 일생 가장 큼지막한 불행이 되었다. 딸아이가 우발적 마법으로 선물해준 인형들의 머리를 죄 동강낸 것을 본 날, 부모는 길게 울었다.
이후 부부는 그들이 사고사로 사망할 때까지, 온힘을 다해 아이에게 예절, 사회성, 그리고 도덕성을 주입시키려 노력한다. 의식적 사회화다. 신념의 세뇌화다.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듯 말간 얼굴을 하고 있는 아이에게 그들은 아침해가 뜨고 저녁달이 빛날 동안 수없이 속삭였다. '티쉬, 내 딸, 너는 충분히 평범한 아이가 될 수 있단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긍정적인 상태란다. 그러지 못하면 너는 커서도 영영 외롭고 말 거란다.'
그들의 가르침은 그들이 죽어 이 세상에 아이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졌을 때에야 드디어 빛을 발했다. 하나 아주 먼 부계 친척이자 머글인 펄의 후견인은 펄의 재산을 적당히 빼돌리는 것에 더 관심이 있었으므로 펄에게 고용인을 통한 최소한의 보살핌을 제공했을 뿐, 함께 살아주거나 감정적 위안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미리 작성된 유언장을 보고, 혹은 부모의 장례식장에서 아무런 슬픔도 내비치지 않는 아이를 보며 깨달았다. 이 아이는 그릇된 구석이 있다. 그는 아이의 부모 이상으로 체계적이고 엄격하며 혹독한 가르침을 줄 가정교사들을 무수히 고용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아이를 올바른 길로 이끌었다. 진실로 옳다. 그는 엉뚱하고 그릇된 언행을 했다가도 상대방의 떠름한 기색을 순식간에 읽어내고 수정하는 속도가 기막히게 빨랐고, 점차 더 나은 모습을 보였다. 쉽게 말해 교정되어가고 있었다. 타인의 감정에 관심은 없었으나 제 감정은 외롭고 공허하다 외치고 있다. 그렇다면 외롭지 않고 싶었다. 호그와트에 가기 전까지, 그는 외롭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스물셋 후 저택은 주인 없이 최소한도의 사용인들만이 고용된 채로, 그러나 여전히 정원만은 아름다울 것이다. 본래라면 부모의 유언에 따라 아이는 학교에 진학치 아니하고 계속 홈스쿨링을 하며 외부와의 교류를 최소화한 채 길러졌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저택의 건물로 둘러싸인 고립된 정원에서 컸다. 다만 이를 어찌 그르다 하겠는가. 어찌. 그는 누구보다 사랑받은 딸이잖는가.
02. 사회생활
졸업 후 그는 미리 친구들에게 말해둔대로 별다른 직업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러지 않고도 충분히 먹고살 만큼 유복한 아가씨니까. 대신에 그는 상술했듯 사람들을 기꺼이 도우며 지냈다. 본인의 평판이 올라가기를 바랐고 그럼으로써 재산, 명예, 신분 상승 그 어떠한 것도 바라지 않았으나 다만 제 곁에 사람이 있기를 바랐다. 그 사람이 누구든지 상관없다. 누구라도 있어 교류할 수 있으면 설령 그 관계가 상당히 나쁘더라도 최소 외롭지는 않았다. 물론, 저를 아껴주고 다정하게 대해주는 사람일수록 더 좋기야 했지만.
그는 학창시절부터 지속해온 ‘깨어나지 않는 마법사’들의 반려동물을 대신 보호하여 돌봐주는 센터의 대표적인 후원자였고, 잠들기 직전의 마법사들의 말을 옮겨다주는 다정한 전령이었으며, 이외로도 사법부와 연계하여 긴급생계지원 정책을 홍보하는 대사의 역할을 맡은 적도 있었고, 특히 갑자기 제 가족이나 연인이 잠든 까닭을 모르고 당황하는 머글들의 안내자기도 했다. 많은 마법사들이 아미타의 편을 들어주길 원하는 걸 알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상냥하기만 한 약간은 기묘한 사람이었으나, 누구도 그가 선인이라는 점을 의심하지는 아니했다.
물론, 다 스물셋까지의 이야기다. 솔직히 이후의 일을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 저를 두고 어떤 소문이 돌았고 어떤 평가가 내려졌고 그런 건 정말 하나도 모른다. 본인이 하고 있던 활동이 최소한 유지될 수 있을 정도로만 조치하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으니. 그리고 사실 딱히 알고 싶지도 않았다. 두려웠으므로.
03. 호불호
대체 이게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어, 내게.
여전히 외롭지 않고 싶어.
사실 개개인을 좋아하기보단, 누구라도 상관 없었어.
아직도 선량한 취급을 받고 싶어.
아마타가 승리하면,
이런 나도 괜찮을지도 모르지.